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인 더비 (문단 편집) === 문학대첩 === 2008년 문학 : 일명 '''"문학대첩"'''이라고 불렸던 충돌. 위에서도 기재한 걸개가 반으로 찢어져 문학 경기장에 걸린 사건. 10월 4일에 터진 사건으로 현재의 경인더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이 시기까지의 경인더비는 순전히 서포터즈 사이의 갈등이었지, 구단 수준에서 부딪히는 더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경인더비는 서포터즈를 넘어서서, 아예 구단 수준의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고 있다.[[https://www.fmkorea.com/search.php?mid=football_korean&document_srl=3254620557&search_keyword=%EA%B2%BD%EC%9D%B8%EB%8D%94%EB%B9%84+%EC%9E%90%EB%A3%8C&search_target=title_content&page=1|당시 상황 요약 글]]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 경기 전에 서울은 한 걸개를 도둑맞고 만다. 당시 서울 서포터즈는 도난 신고를 하며, 이 걸개를 찾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10월 4일에 경기가 시작된다. 당시 서울은 우승경쟁을 위해서, 인천은 6강 플레이오프 경쟁을 위해서 승점 3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때의 경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축구와 격투기 그 사이를 걷던 경기였다. 양팀 사이에서 격렬한 태클이 오고 갔고, 심판은 이를 통제하는데 실패한다. 그 결과 태클을 빙자한 폭력이 상호 간에 오고가고, 선수들 사이에도 흥분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 와중에 [[정조국]]이 선제골을 넣는다. 그리고는 인천 서포터즈 쪽에 주먹감자를 날리는 세레머니를 한다. 이 결과 인천 서포터즈는 흥분 상태에 돌입한다. 그리고 인천은 득점한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골이 취소되자 흥분의 상태는 더 높아진다. 게다가 드라간의 헤딩슛이 골문으로 향하자 서울 측에서는 구경현이 공을 손으로 쳐내면서 퇴장까지 발생하는 난장판이 벌어지게 되는 등 경기 전반이 혼란의 카오스였던 상황이었다. 경기 중에 전반에는 이준영과 김치우가 크게 충돌을 했고, 후반에는 방승환과 아디가 크게 충돌을 하고, 서울의 안태은은 인천의 박재현에게 정강이를 향해 스터드가 들어가는 태클이 나오던 지경이었다. 참고로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 내용은 무승부였지만, 서울에서 2명이 퇴장을 당했고[* 구경현이 골이 되던 공을 손으로 쳐내서 레드카드, 기성용이 경고 2장을 받아 경고누적 퇴장을 당했다.], 주먹만 나갔으면, 그때부터 축구가 아닌 격투기로 종목을 바꿔서 소개해도 될 정도로 경기 양상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이 경기양상은 선수와 코칭스탭을 넘어서, 서포터즈까지 흥분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경기 중에 이미 이성이 사라진 경기장에 폭탄을 하나 더 던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로 정조국이 안재준과 공중볼을 경합하는 과정에서 광대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당시 정조국은 하락했던 폼을 끌어올렸던 상태였고, 국가대표 재합류 가능성이 높던 상황이었다. 그랬던 그가 광대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자, 선수단은 물론이고 서포터즈들까지 이제 더이상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참고로 이미 인천과 서울 서포터즈는 경기 전에 경기장 바깥에서 한 차례 충돌을 겪은 상태였다.] 그리고 경기장에 분노와 흥분이 가득찬 상황에서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기름에 불을 붙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서울 서포터즈가 분실한 걸개가 문학경기장 S석에 걸린 것이었다. 단순하게 걸개가 걸린 것이 아니었다. 그 걸개가 반으로 찢어진 채로 S석에 걸렸고, 당연히 서울 서포터즈는 인천이 걸개를 훔쳐서 반으로 찢은 뒤에 경기장에 걸은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시작부터 극도의 흥분으로 가득했는데, 경기내내 분노를 키우는 상황이 중첩이 되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대규모 물리적 충돌이었다.[* [[http://cafe.daum.net/CM3Korea/2nkg/2797?q=%EC%9D%B8%EC%B2%9C]] 당시 목격자 게시글이다.] 이미 경기 종료 전에 서울 서포터즈는 인천 서포터즈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던 상황이었다. 경비인력과 경찰이 중재하려 했지만 그 수가 너무 적어, 서포터즈들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본격적인 충돌이 터진다. 이 충돌은 추가로 증원된 경찰인력이 들어와서야 끝이 났는데, 그 와중에 서울 서포터즈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경기 직후에는 서울 서포터즈 인천 구단 사무실에 쳐들어가기까지 했는데, 다행이 물리적인 폭력 및 재산파괴 행위는 없었다.[* 구단 사무실에서 폭력사태가 터졌으면, 이건 연맹에서 처리해야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대규모 충돌을 언론에서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언론에서는 집중적으로 이 충돌을 다뤘는데, 당연히 기사 내용이 나올 때마다 서울을 서울대로 분노, 인천은 인천대로 분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억측마저도 기사화 되면서[* 안재준이 고의로 정조국을 부상입혔다는 내용이었다.] 인천 구단은 말 그대로 분기탱천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일은 이후에 있을 경인더비부터는 서포터즈의 문제가 아니라 구단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서울 구단도 이를 마구 갈게 되었다. 당시 이 사건이 얼마나 컸던지, [[아이러브사커]]와 같은 당대의 주류 축구커뮤니티에서 다른 경기들의 게시글은 그냥 묻혀버리고, 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진 충돌에 대한 글이 태풍처럼 올라오기 시작한다. 당연히 커뮤니티 내에서도 서울과 인천 양 팀 팬들을 크게 충돌했다.[* 당시 운영진들이 이 충돌을 진정시키고자, 강퇴처분을 10명 가까이 내렸다는 글이 있었을 정도였다.] 충돌 목록에서도 가장 긴 분량을 자랑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대 경인더비 충돌 중에 이보다도 큰 충돌은 없었다. 이 충돌로 경인더비는 서포터즈만의 영역을 넘어서 언론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했고, 양팀 서포터즈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당연히 구단 간의 사이도 크게 틀어져 버렸고, 오로지 감정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이후로도 양팀은 지속적인 충돌을 겪고 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어린 팬들은 서울과 인천이 왜 더비가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양팀의 더비 자체가 성립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다.[* 지역도 다르고, 팀의 규모나 시설 자금력에서 인천이 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1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정이 남았을 정도로 이 날의 충돌은 굉장히 컸다. 그리고 결말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걸개 도난 사건에 대해서 수사를 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증거가 없었다. 서울도 범인을 인천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정황증거만으로 경찰이 인천은 범인으로 수사할 리가 없었고 직접증거는 서울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 끝이 났고, 마무리가 정확히 안 맺어진 사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리가 없었다. 결국 경인더비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원한 적대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